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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yond What You See-사물에서 사유로

  • 전시분류

    개인

  • 전시기간

    2025-08-14 ~ 2025-08-27

  • 참여작가

    장호정

  • 전시 장소

    계양 아트갤러리,계양 문화원

  • 유/무료

    무료

  • 문의처

    wesin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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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창작 생애지원 공모 선정작가 개인전
장호정 'Beyond What You See-사물에서 사유로'




사물의 깊이를 응시하는 회화

조경진(연세대학교 연구교수, 미술비평)

장호정은 줄곧 ‘보이는 것 너머 Beyond What You See’를 테마로 작업해 왔다. 스펙터클한 이미지가 넘쳐나고, 보이는 것조차 정보로 소화하기 어려운 과잉 이미지의 시대에, 그의 시선은 언제나 보이는 것 너머로 향해 있었다.

그가 말하는 ‘보이는 것 너머’, 정말로 직접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그것은 있지만 보이지 않는 것이다. 사랑의 무수한 행위들이 있어도, 사랑이 따로 가시적 사물로 있는 게 아닌 것처럼 말이다. 존재나 존재의 많은 양태는 보이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은폐된 존재를 탈은폐하라’는 하이데거의 존재론적 예술론의 언명이나, ‘보이지 않는 힘을 보이게 하라’는 들뢰즈의 예술적 요청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예술은 늘 보이지 않는 것들, 이른바 실재를 지향해 왔다. 세계나 현실의 실재건, 마음의 실재건, 사물이나 현상의 실재건, 아니면 형이상학적 실재건 상관 없다. 하지만, 예술의 숙명은 그 일을 필연적으로 보이는 것, 감각적 형식을 매개해서만 할 수 있다는 데 있다. 그러니, 장호정도 보이는 것 너머를 보여주고, 그것으로 우리의 시선과 감각을 돌리기 위해, 그것에 대한 체험으로 우리를 이끌기 위해, 보이는 것을 통과하는 방식을 경유한다.

그런데 그의 작업에서 ‘보이는 것’조차도 특별하지 않다. 감각적 충격을 주거나, 미적 현상으로 강한 인상을 남기거나, 시선을 사로잡는 휘황찬란함도 없다. 그는 감각적 자극이나 인상으로 관람자를 유혹하는 방식을 의도적으로 택하지 않는다. 그가 <Beyond What You See> 연작에서 가장 많이 그려온 것은 다름 아닌 비닐이다. 이 사물은 현대 일상에서 물건을 담거나 포장하는 기능 외에는 거의 의미나 중요성을 부여받지 못한다. 산업 사회에서 생산된 수많은 물질 중에서도 가장 싸고 흔한 물건이며, 미적 감성을 고려해 만들어진 것도 아니기에, 감흥을 일으키는 대상이 되기도 어렵다. 비닐은 우리에게 꼭 필요하지만, 지속 불가능한 소비 문화를 상징하며, 환경 파괴의 주범으로 지목되기도 한다. 대부분은 단 한 번 쓰이고, 아무런 망설임 없이 쓰레기통에 버려진다. 그야말로 가장 하찮은 사물 중 하나인 셈이다.

도리어, 그는 이 보잘 것 없는 대상을 회화의 소재로 선택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존귀한 사물처럼 화면 전면에 꽉 차게 해 그 사물이 우리의 시야 전부를 차지하도록 만든다. 비닐이 무슨 예술이 되겠는가. 그것을 가져왔다는 게 무슨 대단한 일이겠는가. 하지만, 비닐을 어떻게 보여주는지, 거기에서 어떤 경험을 끌어내는지, 그래서 비닐이 하찮은 사물이 아니라, 다른 무엇으로 보이는지, 우리가 우리 주위의 사물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갖게 되는지, 결국, 그렇게 해서 우리가 어떻게 존재하는지, 궁극에 그것이 우리를 지금 보이는 너머로 우리를 데려간다면, 그것이야말로 예술의 정수가 그의 작업을 통해 발휘되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예술가로서 장호정의 역량이 있다. 

그는 여러 사물 중 하나도, 다수의 비닐 중 하나도 아닌, 단 하나의 비닐을 독립적으로 화면에 배치한다. 그 비닐은 마치 우주에 다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 듯, 화면 전체를 가득 채운다. 이로써 우리는 오직 그 대상 하나와 대면하게 된다. 그 대면은 물리적 거리감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일반적인 회화에서 사물들은 공간의 어딘가에 배치되지만, 장호정의 비닐은 화면의 가장 전면, 거의 물리적 표면 위에 놓여 있다. 관람자는 사실상 그것과 직면하게끔 요구받는다. 이러한 강렬한 대면을 유도하기 위해, 그는 또 다른 형식적 장치를 마련한다. 바로 비닐 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진공의 공간이다. 그는 비닐 외의 어떤 배경이나 맥락적 요소도 허용하지 않는다. 이 연출은 비닐이 속했던 모든 환경과 관계를 제거하고, 오직 사물 그 자체에 집중하도록 하기 위한 의도다. 그것은 모든 우연성과 관계들의 소란스러움을 걷어낸 순수한 응시의 장면이며, 이 장면 속에서 비닐은 하나의 독립된 존재로 우리 앞에 선다.

비닐이 다시 우리의 일상 맥락에서 읽히는 순간, 그 비닐은 일상의 이야기들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우리의 일상 공간에서 비닐은 한 번도 진짜 비닐이었던 적이 없다. 그것은 그저 우리의 필요와 삶의 물질적, 경제적 조건에서, 바로 그 맥락에서 존재했던 객체일 뿐이다. 그것은 공장과 마트에서 놓인 비닐이고, ‘우리에게 비닐’이었다. 하이데거에게 고흐의 구두가 철저히 농부의 세계나 대지에 연관된 사물, 그러한 사물의 존재였다면, 반대로, 장호정은 사물의 존재 연관의 맥락을 완전히 끊어내고, 오로지 이 사물이 그 사물의 자율적 실재성으로 존재하도록 한다. 그 사물은 이제 완벽한 진공 속에 머물며, 유일하게 우리 자신과만 대면한다. 비닐은 오직 그 자신만을 말하며, 그 자신으로만 우리를 마주한다. 우리는 거의 매일 사용하는 비닐을 이렇게 만나 본 적이 없다. 장호정의 작업은 우리가 비닐이라는 이 사물을 이런 방식으로 대면하게 하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사물에 대한 태도와 시선, 감각의 초점을 이동하게 하는 것만으로도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존재한다. 

그의 작업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 그것은 예술의 궁극적 작용, 곧 은유를 발생시킨다. 이 은유는 화면에 배치된 여러 미적 속성으로부터 출현한다. 진공과 탈맥락의 구성은 존재의 실재적 영역에 대한 은유이고, 비닐의 투명한 성질은 모든 맥락에서 물러나 있는 실재를 들여다보는 투명성의 은유이며, 마지막으로 비닐의 주름은 그것이 단지 개념적이거나 추상적인 대상이 아니라, 인간과 다른 사물들과 함께 삶을 살아온 구체적인 존재임을 보여주는 은유다. 그 주름은 비닐의 역사이자, 곧 우리 자신의 삶의 주름진 서사에 대한 은유이다.

장호정에게 확대된 비닐의 무수한 주름은 “기록된 시간이자 인생의 모습”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무형의 공기와 빛을 머금은 비닐엔 삶의 순간이 남겨져 있고, 그런 흔적은 우리를 영원으로 인도합니다. 관객은 사물의 표면에 새겨진 흔적 속에 어른거리는 사물의 존재와 시간을 되짚어 볼 수 있을 겁니다.”(작가노트, 2025) 사물의 깊이를 대면하게 될 때, 그것은 더 이상 한낱 하찮은 비닐이 아니라, 아름답고, 심지어 숭고한 대상으로 떠오른다. 사물이 이렇게 다르게 나타날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보이는 것 너머’의 존재와 실재성을 마주하게 되며, 장호정은 이를 포착하고 경험하게 만들기 위해 자신의 미적 형식을 창안해 왔다.

하먼을 위시한 객체 지향 철학, 사물 철학이 말하는 가장 중요한 통찰 중 하나는 사물은 항상 우리가 생각하거나, 우리에게 나타나는 것 이상이라는 것이다. 그들의 전제를 따르지 않더라도, 우리는 지금 현재 내 앞의 사물들이 지금 있는 것보다 더 큰 잠재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 잠재성은 다른 상황, 사건, 다른 사물들과의 관계, 즉 무수한 배치 앞에 열려 있다. 장호정은 자신의 회화를 통해 이 근본적인 전제를 몸소 실행해 왔다. 그는 그저 철학적 전제나 명제가 아니라, 감각과 감성으로, 그리고 미적 형식으로 우리가 그러한 직접 그 이상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도록 우리의 정신에 자유로운 활력을 부여해 왔다. 그의 미적 실천과 예술적 탐색은 이제 다른 사물들, 다른 상황들로 확장되고 있지만, 사물 너머, 보이는 것 너머의 차원으로 우리를 데려가는 일은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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